이장우의 생각

박일수열사21주기 현대중공업 전하문 21년전 전하문 앞에는 컨테이너가 하나 놓여있었다. 조돈희.이갑용.설남종.김대한. 현대중공업에서 해고된 네명의 동지들이 선전전을 하면서 농성하던 곳이었다. 해고자 중 이갑용 전 민주노총위원장은 동구청장을 하고 있으면서 퇴근 후 해고복직 피켓을 들었고 그로인해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도 있었다. 당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어용대의원들이 대거 당선 되고 민주파 동지들이 거의 낙선하면서 위기를 맞고있었다. 박일수열사는 해고자들의 컨테이너에 가끔들렀는데 나도 거기에서 동지를 처음 만났다. 말 수가 적고 대체적으로 조용한 동지셨다. 2월14일 박일수열사께서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 라는 말씀을 남기고 분신하셨다.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당일 박일수 열사를 열사로 인정하고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놓고 다음날 아침 이를 뒤집는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4월 총선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민주노동당 후보는 열사집회에 참여하면 표떨어진다는 이유로 자취를 감췄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과 총선후보까지 모두 열사 앞에서 배신했다. 지금 생각해도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투쟁을 이끌었지만 힘있는 투쟁이 될리없었다. 현대중공업 어용대의원들이 장례식장을 침탈해 열사의 영전을 뒤엎어버리는 일이 일어나도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대응하다가 폭행만 당했다. 나는 당시 열사를 모신 울산대병원의 노동조합 지부장 출신으로 보건노조 울경본부장직을 맏고 있었다. 어용 대의원들이 쳐들어온다는걸 알아도 연대하러오는 동지들이 10명 미만이었는데 어용대의원들은 150명 정도 되었다. 늘 두들겨 맞고 머리털이 다 뽑히는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2인1조로 일상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고, 사진을 찍으면 사진기를 탈취하고, 거리에 현수막이라도 내걸면 몇시간 가지 못해 없어졌다. 무법천지였다. 어쩌다 잡힌 전국 집중투쟁이 유일한 저항이었다. 암울한 투쟁의 시간을 버티면서 겨우 합의 하고 열사투쟁을 마무리했지만 현대중공업은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배달호 열사, 이해남 열사, 이현중 열사, 김주익 열사, 곽재규 열사, 이용석 열사. 204명의 노동자가 구속된 2003년 열사 정국의 끝자락이었다 대통령이던 노무현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했다. 21년이 지난 지금. 노동조합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경비대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현대중공업 지부 대의원선거에서 민주파가 대거 낙선하고 사측에 가깝다는 대의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표떨어진다며 열사를 배신했던 사람들은 다시 민주당의 위성정당으로 넘어갔다. 민주노총은 회계공시 거부를 거부당했다. 21년 전과 너무나 닮아있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위기와 두려움이 느껴진다.20250214_172401.jpg20250214_183510.jpg20250214_172401.jpg20250214_1835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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