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의 생각

이장우 2026.02.07 22: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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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솥발산 박일수열사 열사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2004년 2월 7일 새벽 한 노동자가 자기 몸에 불을 살랐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하청노동자 박일수의 분신이었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이 이제 들불처럼 일어 나겠구나' 라는 기대가 ㅅ술렁이었지만 그기까지였습니다.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조합은 이미 어용노조였습니다. 

현중사내하청 노조가 있었지만 힘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87 노동자 대투쟁을 만들었던 현중노조 활동가들의 집회 참여자도 손가락으로 셀만큼 줄어들었습니다. 4월총선 후보로 나선 민주노동당 후보는 표 안된다며 집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은 더 움츠렸고 숨죽여 분노의 눈물을 감춰야 했습니다.  몇몇의 하청노조 간부들이 크레인에 올랐지만 몇 시간만에 경비대에게 죽을 만큼의 구타를 당하고 끌려 내려왔습니다. 


주체 당사자가 없는 힘겨운 투쟁을 민주노총울산본부가 맡았고 2개월간 투쟁 끝에 노동조합 활동 보장과 유족보상에 합의할 수 있었지만 유족보상외에는 지켜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박일수 열사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전에 한마음회를 결성해서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했습니다. 갖은 노력에도 사측의 업체 폐업 탄압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하청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한 단 하나의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 최대 최고 강성 노동조합이라 불리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하청노동자들의 분노에 찬물을 끼얹었고 어용이 되었습니다. 지역연대는 위축되고 경찰과 구사대 경비대는 폭력으로 일관했습니다. 


우리가 준비하지 못해서 우리가 강결하지 못해서 열사의 바램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22년전 현중 하청보다 지금의 현중 하청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과급 문제나 임금, 9시간 한 공수 문제 등 드러난 문제도 문제지만 존재에 대한 차별은 "인간답게"라는 말을 떠올리기에도 힘겨운 좌절을 안겨주는 현실입니다. 


 나는 울대병원노조 간부였지만 2004년 그 투쟁의 대책위원으로 처음 부터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참담하게도 현대중공업노조 대의원들이 영안실로 쳐들어와 박일수열사 빈소를 두번이나 박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그들에게 폭행도 당했습니다. 용역 경비들의 폭행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항상 미행을 당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분노의 기억입니다. 그 후 22년 동안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했습니다. 박일수 열사투쟁은 내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 주요 모순으로 인식하게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잊혀지고 사라진것 같지만 22년전 박일수열사 의 정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미약하지만 박일수열사께서 남긴 이루지 못한 숙제, 하청노동자 단결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2월13일(금)오후 5시30분 현중 정문 건너편, 박일수열사 22주기 추모대회에 모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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